저는 3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고향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성도님들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렸을 때 교회학교에서 줄줄 성경 암송을 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새벽기도를 빠짐없이 드렸으며 노회에서 실시하는 성경고사에서도 1등을 하였습니다. 1974년 민족의 대부흥회인 ‘엑스폴로 74’ 때는 서울까지 올라와 여의도 광장에서 억수 같이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도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사영리 공부를 하며 남산공원으로 전도 대회를 나갔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1977년 고향에서 부천으로 올라와 원미동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신앙의 교만이 생기고 때론 목사님의 설교도 비평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교회에서 가시 노릇을 하는 나를 하나님께서는 채찍을 들어 때리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결혼 1개월 만에 회사에서 해고 되었고,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도 직장이 없어 매일 방안에서 뒹굴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나의 힘으로 해결 하려고 하면 모든 일은 더욱 안 좋게 돌아갔습니다.
아내는 매일 같이 성전에 올라가 밤을 세워가며 울부짖으며 철야 기도하는데 나는 따뜻한 방에서 잠만 잤습니다. 아들이 태어나서도 산모는 배불리 밥도 먹지 못하고 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워가면서 직장을 찾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일을 하였지만 나는 그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였는데 그 때에 내가 정말 죄인이고 교회의 가시요 목사님의 목회에 걸림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린 후 목사님을 찾아가 나의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을 때 목사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시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후부터 나의 모든 일들이 풀려 나가며 오늘날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모든 성도님들과 목사님의 중보 기도덕분이었습니다.
한번은 회사 옆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났었습니다. 당시 내가 1m만 앞으로 더 갔어도 거대한 철 대문에 깔려서 즉사 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나를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주셔서 생명을 지켜 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보일러가 폭발하여 큰 사고가 났지만 경미한 상처만을 입어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그때 생긴 상처를 볼 때 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죽음 직전에서 여러 번 건져 주셨으며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심에 정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번 확신반 성경 공부를 통하여 느슨해진 나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자가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자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지 않겠느냐’(마 7:9-11)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제는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남은 생을 주님을 위하여 충성된 종으로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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