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으로 기억이 됩니다. 외갓집은 불교를 믿었고 지독히 불심이 깊었던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어머니의 성장 환경은 성탄절 때 교회에서 나눠주는 과자선물을 받으러 가던 나의 모습에서 부모님들과 인생의 줄다리기가 시작 되었던 것으로 이 글을 열어 가려 합니다. 교회를 갔다 온 저에게 무던히도 야단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어린 맘의 저에게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유인즉, 그런 모습의 어머니의 말씀과 행동에서 더욱 교회 출석이 양호했던 것 같았습니다.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괜실히 반항하는 초등학생의 영생을 얻기 전 내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주님과의 첫 만남에서 구원의 확신은 기대하기 힘들었고 성경구절, 예수님 때문에 죄사함 받았다는 것은 더더욱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난 중학교 3학년 여름 무렵,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남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에 교회를 갔다 온 저에게 부모님은 믿지 않는 여느 부모들처럼 어떻게 고등학교에 합격하느냐고 야단치며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린 저로서는 사춘기 반항하듯이 부모님께 대들 듯이 외쳤습니다. “고등학교에 합격해서 잘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화를 내면서... 그럴 때면 교회로 나아가 하나님께 따지듯 기도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합격하도록 도와 달라고 만약 합격치 못하면 하나님을 깨끗이 잊어버리겠다고...” 이런 기도는 제가 하나님께 협박하는 기도인지도 모르며 그냥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며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그리곤 주일날을 제외하고는 책과 뒹굴며 씨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의 철없던 기도가 무섭긴 무서우셨던지(?) 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조금은 달라지셨던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고 주일날 피곤에 지쳐 잠자던 저를 깨워주시며 교회 안가느냐고 물어보시던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고교 생활 3년 동안 신앙생활을 보내며 지금의 제 모습과 비교해 보면서 하나님께 너무도 죄송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골고다학생회”라는 기도회 모임에서 크나큰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느껴 보았고 대학생활, 군대생활, 그리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에도 늘 함께 하시던 주님의 사랑에 행복했던 청년시절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안 된다는 것보단 되도록 노력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며 낙천적인 모습을, 저에게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젊은이 모습이었음을 되새겨 보곤 했습니다. 기독교 집안이었던 아내 변민자 집사와의 만남은 저에겐 행운이 아닐 수 없었으며 결혼까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런 만남 또한 주님의 뜻이 계심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며 주님을 항상 모시고 사는 가정이 되었음에 항상 감사하는 맘으로 생활해 오고 있습니다.
5남선교회 단체로 시작된 확신반 교육에서 뜻하지 않게 수료를 할 수 없었지만 청년부장으로 9기 확신반에서 청년부 젊은이들과 함께 수료할 수 있었음에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청년부장으로 청년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를 느끼며 깨달아 알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임을 새삼 느끼곤 합니다.
4주 동안 확신반 교육을 통해 잊고 생활해 오던 하나님의 자녀이었던 “최정훈” 나 자신임을 되새기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그 어떤 이에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김승민 담임목사님의 교육을 통해 전해지는 사랑은 너무도 뜨거웠고 양육을 담당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는 시간이었습니다. 4주 동안 함께 했던 9기 청년들과 담임목사님 그리고 스텝 담당 부목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 많이많이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수료식을 축하해 주시는 모든 교우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제9기 확신반 수료자 최정훈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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